중년의 하루

넷플릭스 참교육 후기 | 은퇴교사가 본 교권의 현실, 교권국은 왜 필요할까

여여한 일상 2026. 6. 29. 15:54

넷플릭스 참교육이 요즘 워낙 화제라 나도 찾아보게 되었다.

 

등장하는 배우들은 하나같이 연기를 참 잘한다. 특히 김무열 배우는 처음에는 평범한 인상이라고 생각했는데, 보면 볼수록 '교권국 감독관'이라는 역할에 너무나 잘 어울린다. 깡마른 체형에 긴 다리, 감정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 차가운 표정까지. 말없이 서 있기만 해도 묘한 긴장감이 느껴지는 배우다.

 

하지만 드라마를 보는 내내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배우가 아니라 '우진 엄마'였다.

자식을 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결국 교사도 무너뜨리고 다른 학생들의 교육권까지 함께 해치는 인물이다. 드라마를 보면서 '설마 저럴까?'라는 생각보다 '나도 저런 학부모를 몇 번은 만났지.'라는 기억이 먼저 떠올랐다.

33년 동안 교직에 있으면서 실제로 그런 학부모를 여러 차례 만났다.

 

담임에게 전화를 걸어 처음부터 목소리를 높이고, 교사의 설명은 끝까지 들으려 하지 않은 채 자신의 주장만 쏟아낸 뒤 전화를 일방적으로 끊어 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반대로 교사가 학부모에게 그렇게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큰 문제가 되었을 것이다. 그런 전화를 받고 나면 하루 종일 마음이 무거웠고, 교사도 감정의 상처를 입는 평범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새삼 실감하곤 했다.

 

그러다 문득 오늘 만난 예전 직장 동료 선생님이 떠올랐다.

 

학교를 떠난 지 벌써 10년 가까이 되었는데도 아직도 시험 문제를 잘못 출제해 학교에서 곤란을 겪는 꿈을 꾼다고 하셨다. 그 말을 듣고 함께 웃었지만, 사실 마냥 웃을 일만은 아니었다. 몸은 학교를 떠났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여전히 교무실이 남아 있는 것 같았다. 그만큼 현직 시절의 긴장과 압박이 무의식 깊은 곳에 흉터처럼 남아 있다는 뜻일 테니까.

 

■ 교권국이 있었다면 달라졌을까

현실의 학교에는 교권국 같은 든든한 울타리가 없다. 오히려 교사는 억울한 일을 당해도 먼저 자신을 해명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나 역시 그런 일을 겪은 적이 있다. 

 

중학교 3학년 담임을 맡았을 때의 일이다. 고등학교 원서를 작성해 주던 시기였다. 함께 살고 있던 어머니의 동의를 받고 원서를 접수했는데, 졸업을 앞두고 연락이 끊겼던 친아버지가 갑자기 학교로 찾아왔다.

"친권이 나한테 있는데 왜 내 허락도 없이 원서를 썼느냐." 학교는 순식간에 큰 혼란에 빠졌고 교육청에도 민원이 제기됐다. 결국 교육청은 민원을 받아들여 학생의 배정 학교를 변경했고 나는 징계를 받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까지 들어야 했다. 

 

그 아이에게는 아무 잘못이 없었다. 어른들의 갈등 속에서 가장 힘들었을 사람은 결국 학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교사에게는 친권이 누구에게 있는지 확인할 권한도, 이를 증명하는 서류를 요구할 권한도 없다. 당시 주민등록에도 아버지는 올라와 있지 않았고, 아이 역시 세 살 이후 아버지와는 연락 한 번 한 적이 없다고 했다. 교사가 확인할 수도, 확인할 권한도 없는 일을 두고 모든 책임을 교사에게 돌리는 현실이 참 억울했다. 그 일을 겪으며 '교사를 대신해 사실관계를 객관적으로 확인해 주는 제도가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오래도록 했다.

■ 현실의 학교에는 교권국이 없었다.

민원이 발생하면 교육청도, 학교 관리자도 기관의 시선과 여론을 먼저 의식하기 바빴다. 결국 교사의 편은 어디에도 없었고, 가장 최전선에서 모든 화살을 홀로 감당하는 사람은 담임교사 개인뿐이었다.

승진을 하지 않은 평교사들은 나이가 들어도 마음이 편치 않다. 동료, 관리자, 학부모와 학생에게 두루 상처를 받지만 자존심 때문에 속으로 삼키는 날이 더 많았다.

 

그래서 《참교육》 속 교권국은 현실성이 없다기보다, 많은 교사들이 마음속으로 한 번쯤 꿈꾸었을 법한 판타지처럼 느껴졌다. 누군가 내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고, 사실을 확인해 주며, 교사도 한 사람의 시민으로 존중받을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망 말이다.

 

드라마를 다 보고 나니 원작 웹툰이 더 궁금해졌다. 드라마보다 수위도 높고 생략된 에피소드도 많다니, 조만간 원작을 찾아 정주행하며 드라마와 비교해 보는 재미를 즐겨볼 생각이다. 네이버 웹툰 앱도 설치해야겠다.

 

드라마를 보면서 이런 생각도 들었다. 언젠가는 정치권에서도 교권 보호를 위한 새로운 제도를 논의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물론 드라마 속 교권국에는 삼청교육대를 떠올리게 하는 과격한 폭력과 사적 제재가 등장한다. 그런 방식은 현실에서는 결코 용납될 수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

 

하지만 그런 폭력적인 설정을 모두 걷어내고, 교사가 부당한 민원이나 악성 분쟁에 휘말렸을 때 독립적으로 사실관계를 조사하고 법률적·행정적으로 지원해 주는 교권 보호기구가 있다면 어떨까. 나는 그런 조직은 우리 교육 현장에 충분히 검토해 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현실의 학교에서는 '교권'을 이야기하기 전에 교사의 기본적인 인권부터 지켜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학생의 인권도, 학부모의 권리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어느 한쪽의 권리만 커지고 다른 한쪽은 계속 침묵을 강요받는 구조라면 건강한 교육은 이루어질 수 없다. 교육은 어느 한쪽이 이기는 게임이 아니라, 학생과 학부모, 그리고 교사가 서로를 존중할 때 비로소 제대로 설 수 있기 때문이다.

■ 은퇴하고 나서야 웃을 수 있었다.

 

무거운 이야기를 나누던 우리는 어느새 은퇴 후의 삶으로 화제가 옮겨갔다.

코다리조림 하나 시켜 놓고 저렴한 음료를 마시며 몇 시간을 쉼 없이 떠들었다. 둘 다 연금생활자가 되어 월급을 받던 시절보다 수입은 줄었지만, 이상하게 행복의 크기는 더 커졌다는 데 서로 공감했다.

그 선생님은 부산에도 집이 있어 인천과 부산을 오가며 지내신다. "부산은 여름에는 덜 덥고 겨울에도 덜 춥다. 경치도 정말 좋으니 꼭 놀러 와." 그러면서 해변열차도 함께 타고, 용궁사에서 아난티까지 이어지는 바닷길을 평일에 같이 걸어 보자고 약속까지 잡았다.

 

나도 최근 당근 모임에서 만난 좋은 사람들과 여행을 다니며 보내는 소소한 일상을 들려드렸다. 은퇴 후에는 오히려 사람을 만나고, 여행을 기획하고,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 가는 즐거움이 생겼다고 이야기했다.

 

헤어지기 전,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같은 말을 했다. "학교 다닐 때보다 지금이 훨씬 더 행복하다."

그 한마디가 오래 마음에 남았다.

 

평생을 교단에서 보냈던 두 사람이 은퇴하고 나서야 비로소 마음 편히 웃을 수 있다고 말하는 현실. 그 웃음은 지금이 행복해서 나온 웃음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얼마나 오랫동안 긴장 속에서 버텨 왔는지를 보여주는 웃음이기도 했다.

 

드라마 속 교권국은 판타지일지라도, 교사가 억울할 때 최소한 공정하게 사실을 확인받고 보호받을 수 있는 안전망만큼은 현실이 되기를 바란다.

 

교사는 특별한 특권을 바라는 사람이 아니다.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사실을 공정하게 확인받을 최소한의 권리와 안전망을 바랄 뿐이다.

학생도 존중받고, 학부모도 존중받고, 교사도 존중받는 학교. 그런 학교가 많아질 때 비로소 '참교육'이라는 말도 드라마 속 판타지가 아니라 우리의 현실이 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