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의 하루

고양 강강수월래 식사 후기 | 당근모임과 함께한 점심, 그리고 인생의 오후

여여한 일상 2026. 6. 8. 11:03

며칠 전, 당근모임 지인들과 함께 고양 강강수월래에 다녀왔다.

 

고기 맛집으로 워낙 유명한 곳이지만, 이날은 부담 없이 가볍게 만나는 자리였다. 갈비탕과 육회비빔밥 같은 단품 메뉴를 주문했고 가격은 1인당 15,000원 정도.

솔직히 음식 맛은 "와, 정말 맛있다!" 하는 수준은 아니었다. 깔끔하고 무난했다. 하지만 당근모임답게 더치페이로 부담 없이 만나 웃고 떠들 수 있었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식사를 마치고 에어컨이 빵빵한 실내를 벗어나 한옥 마당으로 나갔다. 넓은 마당에는 파라솔과 그늘막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었고, 한쪽 작은 무대에서는 라이브 공연이 한창이었다.

 

텔레비전에서 본 적 없는 가수였다. 이름조차 알지 못하는 중년의 가수가 기타 하나를 메고 혼자 노래하고, 혼자 분위기를 띄우며 묵묵히 무대를 지키고 있었다.

그런데 공연장 풍경이 조금 묘했다.

 

대부분은 식사하러 왔다가 공짜 공연을 보는 손님들이었다. 다들 자기 일행과 이야기꽃을 피우느라 바빴고, 무대 위 가수보다 테이블 위 참외와 방울토마토가 더 주인공 대접을 받는 분위기였다. 가수는 땀을 흘리며 열심히 노래를 부르는데, 무대 아래에서는 저마다의 수다가 이어졌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왠지 마음 한구석이 짠해졌다.

 

무대 앞에서는 할아버지 댄서 한 분이 가수의 흥을 돋우겠다며 홀로 춤을 추고 계셨다.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저 가수도 젊은 시절에는 더 큰 무대를 꿈꾸지 않았을까. 수많은 관객의 박수와 함성을 받으며 노래하는 날을 꿈꾸지 않았을까.

 

문득 그 가수의 '리즈 시절'이 궁금해졌다.

 

 

 

마음이 통했던 걸까. 어느새 우리 일행도 공연에 푹 빠져들기 시작했다. 노래가 끝날 때마다 큰 박수를 치고, "와아~!" 하고 함성을 지르고, 신청곡도 부탁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함께 춤도 추었다.

아마 그 작은 무대에서 그렇게 열띤 호응을 받아본 게 가수에게도 꽤 오랜만이었을 것이다.

 

공연이 끝난 뒤에는 우리끼리 작은 성금을 모아 전달했다. 큰돈은 아니었지만 진심 어린 응원의 마음이었다.

 

즉석에서 신청곡을 불러주고, 우리 세대의 추억이 담긴 노래들이 한옥 마당 가득 울려 퍼졌다. 그 시간은 생각보다 따뜻했고, 생각보다 즐거웠다.

 

그런데 우리는 다음 일정 때문에 끝까지 자리를 지키지 못했다. 조금 전까지 박수를 치고 함성을 지르던 열 명의 관객이 한꺼번에 자리를 비웠다.

 

차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문득 궁금해졌다. 우리를 향해 노래를 부르던 그 가수는 텅 빈 무대 앞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우리가 왜 그토록 열심히 박수를 보냈는지 알 것도 같았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것은 무대 위 가수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바로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누구나 한때는 인생의 주인공이었다. 직장에서, 가정에서, 친구들 사이에서 가장 빛나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그 시절을 가슴 한편에 품고 인생의 오후라는 또 다른 계절을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어쩌면 그날의 박수는 가수 한 사람에게만 보낸 응원이 아니었는지 모른다. 한때는 누구보다 뜨겁게 빛났고, 지금도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를 향한 응원이었을 것이다.

 

생각해 보면 이날 우리가 먹은 것은 갈비탕 한 그릇, 육회비빔밥 한 그릇이었다. 하지만 15,000원으로 얻어온 것은 단순한 식사 이상의 것이었다.

 

사람 냄새 나는 만남, 누군가를 응원하는 마음, 그리고 잠시 잊고 지냈던 젊은 날을 다시 떠 올려 본 시간.

부담은 덜고 정은 듬뿍 나누었던 하루.

 

15,000원으로 꽤 괜찮은 힐링을 하고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