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남편 따라 천안 우정힐스 컨트리클럽에 다녀왔다.
한국오픈 골프대회 갤러리로.


나는 아직도 골프를 잘 모른다.
아니, 정확히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남편은 골프를 30년 쳤다.
레슨비, 장비값, 그린피, 밥값, 기름값…
가끔 계산기를 두드리다 보면 정신이 아득해진다.
웬만한 외제차 몇 대는 이미 초록 잔디 위로 사라졌을 것이다. ㅋㅋㅋ
나도 한때 남편 성화에 못 이겨 골프 레슨을 받았다.
반년쯤 배웠나.
그런데 필드 한번 제대로 나가보기도 전에 엘보가 왔다. 😂
보통은 골프를 너무 많이 쳐서 팔이 나간다는데,
나는 잔디 냄새도 제대로 맡기 전에 팔부터 고장 났다.
그때 알았다.
아, 이건 내 운동이 아니구나.
나는 주말이면 늦잠 자고, 편한 옷 입고 빈둥거리고, 넷플릭스 드라마를 시리즈로 해치워야 마음이 놓이는 사람이다.
그런데 골프는 새벽 어둠 속에서 시작되는 운동이었다.
내 체질과는 너무 달랐다.
반면 남편은 골프를 정말 사랑한다.
술과 친구를 좋아하고, 주식을 좋아하고, 골프를 좋아하는데…
문제는 늘 주식이다. 🤣
장이 좋아도 자기가 산 종목만 용케 떨어진다.
가끔은 주식 앱만 켜도 마이너스가 먼저 인사하는 사람 같다.
그래도 골프만큼은 오래 쳤다.
요즘 생각해 보면 다행이다.
저 에너지를 골프에 안 쏟았으면
지금쯤 어디선가 더 큰 사고를 치고 있을지도,
이미 우리가 같이 안 살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어찌 보면 골프는 우리 집 평화를 지켜준 비싼 방패막이인지도 모르겠다.
⛳ 스크래치 하나에 반짝이는 눈
사실 오늘도 가기 싫었다.
“혼자 다녀와…”
그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는데,
주말까지 너무 따로 살면 남 같을 것 같아서 그냥 따라나섰다.

그런데 웬걸.
입장권 스크래치를 긁었더니
19만 8천 원짜리 피크닉 가방에 골프 클립, 골프공까지 줄줄이 당첨됐다.

그 순간 남편 눈빛이 확 달라졌다.
가격표를 몇 번이나 뒤집어 보면서
“이거 진짜 좋은 건데?”
하고 웃는데, 그 얼굴이 꼭 어린애 같았다.
그 나이에도 저렇게 좋아할 게 있다는 게 조금 부럽기도 했다.
‘아…
저 인간은 진심이구나.’
선수들을 따라 코스를 돌다 보니 어느새 만이천보.
골프는 안 쳤는데 체력훈련만 제대로 했다. 😵💫




🙏 미리내에서 조용해진 마음
돌아오는 길엔 내 차례였다.
오래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미리내성지로 향했다.
성지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공기가 달라졌다.

고요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마음이 조용해졌다.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는 스물다섯에 순교했다고 한다.
스물다섯.
요즘으로 치면 아직 아이 같은 나이다.
그러고 보면 예수님도 겨우 서른셋에 십자가를 지셨다.
그런데 나는 그 나이의 곱절을 훌쩍 넘겨 여기까지 살아왔는데도
여전히 믿음은 얕고 마음은 자주 흔들린다.
나이가 들면 조금쯤 단단해질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나는 아직도 작은 말에 쉽게 서운해지고,
내일 일을 걱정하고,
욕심도 많고,
겁도 많다.
게다가 솔직히 말하면…
새벽기도보다 늦잠이 아직 더 좋다. 😅
그래서 그 시대 사람들의 믿음이 더 낯설고 두렵다.
그들에게 신앙은 취향이 아니라 목숨이었다.
나는 기독교인이지만, 사실 교회를 안 나간 지도 꽤 되었다.
그런데 그곳에 서 있으니 이상하게 교단의 차이는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문득 천주교 순교자들의 발자취 위로, 주기철 목사님의 이야기가 겹쳐 떠올랐다.
못 박힌 길 위를 맨발로 걸으면서도 끝내 신사참배를 거절하고 순교하셨던 그 꼿꼿한 믿음.
그런 믿음의 이야기가 퍼지며 뜨겁게 부흥했던 평양은 한때 '동양의 예루살렘'이라 불리기도 했다는데, 오늘날 기독교의 흔적을 찾기 힘든 북한의 현실을 생각하면 격세지감과 함께 묘한 슬픔이 밀려온다.
그 서슬 퍼런 핍박 속에서도 떠나지 않았던 사람들의 기도는 다 어디로 갔을까.
🪨 돌 세 개
오늘 미리내 성지에는 대만에서 온 신자들도 있었다.
그들 뒤에 슬그머니 붙어 설명을 같이 들었다. 😄
그중 가장 오래 남은 이야기.
미리내 성당은 너무 가난해서 벽돌을 살 수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신부님이 말했다고 했다.
"미사 드리러 올 때 돌 세 개씩만 들고 오십시오."
사람들은 산길을 걸어 돌을 가져왔고, 그 돌들이 쌓여 성당이 되었다.


그 말을 듣는데 목끝이 먹먹해졌다.
누군가는 거친 돌 세 개를 품에 안고 산길을 오르며 무슨 기도를 했을까. 이름도 없이 버텨낸 이들의 시간과 끝내 믿음을 떠나지 않았던 마음들이 쌓여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견고한 성당이 되었구나 싶었다.
성지를 걸어 나오며 한참을 생각했다.
다음에 나는 하나님 앞에 가면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믿음은 아직도 서툴고,
나는 여전히 작은 말에 흔들리고 걱정이 많다.
그런데도 오늘 미리내에서,
오래 잊고 있던 마음 하나를 다시 만난 것 같았다.
오늘은 남편을 따라 마지못해 골프장에 갔다가,
뜻밖에도 내 마음 가장 깊은 곳까지 오래 걸어 들어간 날이었다.
미리내에서 만난 그 조용한 고요함이 오래 마음에 남을 것 같다.



📍안성 미리내 성지 방문 정보
혹시 제 글을 읽고 안성 미리내 성지 방문을 계획하시는 분들을 위해 작은 정보를 남겨둡니다.
- 입장료: 무료
- 주차비: 무료 (성지 입구 쪽에 넓은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어 편리하게 주차하실 수 있습니다.)
- 소요 시간: 성지 내부가 생각보다 넓고 고즈넉해서, 천천히 사색하며 둘러보시려면 최소 1시간에서 1시간 반 정도 여유를 두고 방문하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화려한 관광지가 아니라 침묵과 기도의 공간인 만큼, 가벼운 산책을 하듯 편안한 운동화를 신고 조용히 다녀오시기에 참 좋은 곳입니다. 성지 내 나무그늘이 많아서 여름에도 걷기 좋습니다. 낙엽지는 가을에 다시 가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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