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원 보호자로 살아간다는 것
오늘도 나는 요양원에 계신 엄마를 돌보는 보호자로 하루를 살았다.
노모돌봄은 생각보다 길고 조용한 싸움이다. 병원 진료를 예약하고, 약을 타고, 요양원을 오가며 하루를 보내다 보면 문득 내가 딸인지 보호자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돌이켜보면 오랫동안 나는 누군가의 보호자였다. 아들들의 엄마로, 엄마의 딸로, 그리고 작은 생명들의 엄마로. 돌보고 챙기는 일 속에서 시간은 참 빠르게도 흘렀다.
오늘 아침, 엄마의 심장병 약을 받으러 부천세종병원으로 향했다.

한 시간 넘게 대기실에 앉아 있으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는 심장이 아픈 사람이 참 많구나.
조용히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들. 지친 얼굴들. 그리고 말없이 그 곁을 지키는 보호자들.
긴 기다림 끝에 만난 의사 선생님과의 진료 시간은 채 1분도 되지 않았다.

“보호자분이 원하시니 약은 처방해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워낙 고령이시고 심장 질환이 있으시니… 마음의 각오는 늘 하셔야 합니다.”

치매가 시작된 뒤 멈춰버린 엄마의 시간
약을 받아 들고 요양원으로 향했다. 치매가 시작된 뒤 엄마의 시간은 어느 날부터 과거에 머물러 있었다. 엄마는 여전히 당신이 예전에 나와 함께 살던 그 집에 사시는 줄 아신다. 얼마 전까지 나와 함께 살던 내 집, 길게 뻗은 복도 끝에 있던 당신의 방. 엄마의 시간은 아직 그곳에 멈춰 있다.
“너 금방 왔네?”
그 한마디에 마음 한구석이 저릿하게 아려왔다. 하지만 어쩌면 다행인지도 모른다.
엄마의 기억 속에서 나는 여전히 문만 열면 언제든 만날 수 있는 딸이니까.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
“일흔이 된 여자에게 딸이 없다는 것은, 일곱 살 여자아이에게 엄마가 없는 것과 같다.”
젊을 때는 그 말의 무게를 몰랐다. 나이가 들수록 ‘엄마’라는 존재는 점점 더 크고 아련해진다.
지금은 내가 엄마를 돌보고 있지만, 내 마음 가장 깊은 곳에는 여전히 엄마 품이 그리운 어린 딸 하나가 살고 있다.
여전히 채워지지 않는 어린 딸의 마음을 안고, 요양원을 나와 미용을 맡겼던 구찌를 데리러 갔다. 유리문 앞에 잔뜩 기가 죽은 채 앉아 있던 녀석. 나를 보자마자 서러움이 폭발했는지 낑낑거리며 울기 시작했다.


미용하기 전보다 훨씬 더 귀여워졌는데 왜 그렇게 억울하다는 표정인지, 미안하면서도 슬며시 웃음이 났다.
강아지를 키운 지 삼십 년이 넘었다. 미용을 맡기고 데려오는 일을 수없이 반복했으면서도, 문을 열고 마주할 때마다 괜히 가슴 한쪽이 미안해진다. 구찌는 우리 집 아이들 중 가장 개성 강한 녀석이다. 나만 보면 으르렁거리고, 물고, 떼쓰고, 수시로 삐지지만… 볼수록 더 귀엽다.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예쁘다더니, 딱 그 마음이다.
떠나간 반려견이 더 그리운 날
구찌의 재롱을 보며 웃다가도, 문득 오늘은 유난히 먼저 떠난 피트가 보고 싶어졌다. 아픈 몸으로 내 곁을 떠나기 전날까지도 오직 내 눈만 바라보던 아이.
숨 쉬는 것조차 버거워하면서도 끝까지 내 뒤를 졸졸 따라다니던 아이.
피트를 보내던 날, 집 안의 공기 온도마저 달라진 것 같았다. 현관문을 열 때마다 어디선가 쪼르르 달려올 것만 같아 한참을 서성였다. 피트보다 먼저 떠난 졸리를 잃었을 때도 마음이 많이 아팠다. 졸리를 잃고 한동안 풀이 죽어 있던 피트의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 이제는 그 둘이 다시 만나 함께 있을 것 같다.



예전에는 죽음이라는 단어가 막연히 무섭고 외로운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제는 저 세상이 그리 두렵지만은 않다. 그곳에는 분명 피트와 졸리가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나를 보자마자 작은 몸으로 폴짝 뛰어올라 부서져라 꼬리를 흔들고 있을 피트. 마중 나와 조용히 나를 바라보고 있을 졸리. “엄마, 왜 이렇게 늦게 왔어?” 그 맑은 눈빛으로 다시 나를 바라봐 줄 것만 같다.
생각해 보면 나는 평생 누군가의 보호자로 살았지만, 정작 나를 지켜준 것은 그 작은 아이들이었는지도 모른다.
외롭고 지친 날에도, 울고 싶어도 울지 못하던 날에도, 말 못 할 상처를 안고 돌아온 밤에도, 아이들은 아무 조건 없이 내 곁을 지켜주었다.
정작 내 보호자는 누구일까
오늘 하루도 온전히 누군가의 보호자로 채워진 시간이었다.
엄마의 보호자.
구찌의 보호자.
누군가는 나를 기다리고, 나는 또 기꺼이 누군가를 돌보며 살아간다.
그러다 문득 마음 한편에 서늘한 바람이 스친다.
언젠가 이 모든 역할이 끝나는 날, 정작 내 보호자는 누구일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사람은 평생 누군가의 품을 그리워하며 살아가는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엄마를 그리워하고, 떠나간 생명들을 그리워하고, 또 누군가에게 기대어 잠시 쉬고 싶어 한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나를 붙들어 주는 어떤 사랑을 바라며 살아간다.
나는 그 사랑이 하나님이라고 믿는다.
오늘도 나는 누군가의 보호자로 하루를 살아냈다.
그리고 내가 알지 못하는 순간에도, 하나님은 그런 나를 조용히 품에 안아 돌보고 계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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