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모돌봄 일기

엄마를 집으로 데려오지 못한 날

여여한 일상 2026. 4. 30. 13:37

오늘 엄마를 병원에서 퇴원시켰다.

 

솔직히 말하면
집으로 모시고 오고 싶었다.

 

다시 119를 부르더라도,
요양원이 아니라
우리 집으로 가고 싶었다.

 

그런데
엄마를 눈앞에 두고 보니
그 마음이 무너졌다.

 

나는
엄마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결국
다시 요양원으로 모셔다 드렸다.

 

익숙한 곳에 도착하자
엄마는 안심한 얼굴을 했다.

 

그곳이
마치 자식의 집인 것처럼.

 

나는
원장님과 간호사님께
엄마 상태를 설명드리고

병원에서 처방 받은 약을 놓고
돌아서 나왔다.

내일
다시 오겠다고 말하면서.


심장전문병원에서
이상한 장면들을 보았다.

 

엄마보다 훨씬 또렷한 할머니,
밝게 웃던 할머니,

 

알고 보니
엄마보다 두 살 많은
아흔여섯.

 

또 한 분은
엄마보다 스무 살은 젊어 보였는데
아흔둘이라고 했다.

 

그런데
우리 엄마만
유난히 늙어 있었다.

 

왜 그럴까.

생각해 보니
엄마의 삶이 보였다.


엄마는
평생 바느질을 하며 살았다.

 

늘 바빴고,
사람들과 어울릴 시간도 없었다.

 

열여섯 살 때
물에 빠져 죽다 살아난 이후
청각장애를 갖게 되었고,

 

보청기에 의지해
손님들과 겨우 소통하며
평생을 일했다.

 

오십년 전
겨울 한 철에도
한 달에 이백만 원을 벌었다.

 

그 시절,
우리 집을 먹여 살린 건
엄마였다.


아버지는
사람을 잘 믿는 사람이었다.

 

직장을 그만두고
사업을 시작했지만

덤프트럭 일, 과수원, 호텔…
하는 일마다
배신당하고, 돈을 떼였다.

 

결국
엄마의 돈으로 시작한 것들이
하나씩 무너졌다.

 

엄마는
그 시간을
“명랑”이라는 약으로 버텨냈다.


나는
그런 엄마를
오랫동안 미워했다.

 

특히
집에 모시고 있을 때는 더 그랬다.

 

배변을 못 가리는 엄마를
치우고, 씻기고, 빨래하고

 

하루에도 몇 번씩
같은 일을 반복하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내 기저귀를
제대로 갈아준 적도 없는 것 같은데…”

 

그 생각이
나를 더 힘들게 했다.

 

사실
나는 어릴 때부터
엄마가 늘 차갑다고 느꼈다.

 

어릴 적,
엄마는 피곤하다며 곰탕을 시켜
혼자 먹곤 했다.

 

나는 그 옆에 있었지만
늘 나중이었다.

 

어쩌면
계모 같은 느낌으로
마음에 남아 있었는지도 모른다.

 

내 잘못을
아버지에게 그대로 말해
매를 맞게 하던 일,

 

학교 선생님께까지
이르던 기억들.

 

그리고
늘 큰오빠를 더 챙기던 모습.

 

그 모든 것들이
어린 나에게는
서운함으로 남아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엄마를 오래 미워했다.


그런데
요양원에 모시고 나니

 

이제는
엄마가 안쓰럽다.

 

이해가 된다.

 

엄마는
사랑받을 틈 없이
살아온 사람이었다.

 

어릴 적부터
애정을 충분히 받지 못했고,

 

평생
생계를 책임지느라
자신을 돌볼 여유도 없었다.

 

그러니
누군가에게 기대는 삶이
낯설지 않았을 것이다.

 

병원에서 만난
아흔여섯 할머니는

 

자식들이 가까이 있어도
혼자 영덕에 내려가 살며

 

밥을 해 먹고
텃밭을 가꾸고

 

몸이 힘들어지면
스스로 버스를 타고 올라와
아들이 마중을 나온다고 했다.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사람은
스스로 움직일 수 있을 때
건강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요즘은
다른 생각도 든다.

 

일본에서는
죽을 때까지 요양원 같은 의료시설에 가지 않고
자기 집에서 생을 마감하는 것이
하나의 흐름이라고 들었다.

 

남들이 보면 고독사일지 몰라도
본인이 선택한 삶의 끝,
어쩌면 존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

 

곡기를 끊고
집에서 품위 있게 생을 마감하라는 내용의 책도
본 적이 있는 것 같다.

 

무엇이 맞는지는 모르겠다.

요양원이 맞는지, 

집이 맞는지,


그리고
문득
내 노후도 떠올랐다.

 

우리 엄마는
그래도 딸이 하나라도 있지만,

 

나는
딸도 없다.

 

박복한 건지,
웃어야 할 일인지.

 

우리 두 아들이
내가 엄마에게 한 만큼의

절반이라도 할까 싶으면

 

괜히 웃음이 난다.

 

에고, 에고.


다만
오늘의 나는
엄마를 집으로 데려오지 못한 딸이다.

 

그래서
결심했다.

 

엄마에게
거의 매일 가기로.

 

요양원에서
오지 말라고 해도
가기로.

 

그곳에 계신 분들 드실 것이라도
챙겨 들고 가기로.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사랑일 것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