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이면 루틴처럼 엄마가 있는 요양원으로 향한다.

오늘도 장바구니에는 참외 이만 원어치가 들어 있었다.
엄마 드릴 조각 수박도 챙겼다.

마트에서 가장 싱싱하고 당도 높다는 수박을 골라, 엄마 한입 크기로 잘라 담았다.
2인실 엄마 자리 옆에 작은 냉장고를 들여놓은 뒤로는, 거기에 과일을 채워 두는 일이 내 일상이 되었다.
참외는 보호사 선생님들 드시라고 가져가는 거다.
엄마를 돌보는 손들이 조금이라도 덜 지치길 바라는 마음 같은 것.
누군가 우리 엄마 이름을 다정하게 불러 주었으면 하는 마음 같은 것.
오늘 아침에는 큰오빠에게 전화가 왔다.
어버이날에 엄마 보러 오겠다고 했다.
그 말을 엄마에게 전했더니,
내가 갔을 때는 늘 무덤덤하던 얼굴이 순간 환해졌다.
치매라는 병도
마음속 우선순위까지는 지우지 못하는 모양이다.
괜히 웃음이 났다.
서운하다기보다, 엄마는 끝까지 엄마구나 싶어서.
요양원을 나와 친구를 만나러 광명으로 갔다.
광명시민체육관 공영주차장에 차를 세워 두고 천천히 걸었다.
조금만 걸으니 ‘포항물회’가 나왔고,
그 옆에는 작은 식물카페 ‘병풀상회’가 있었다.

📍 광명 하안동 ‘포항물회’
— 포항(가재미) 물회 추천
— 평일 낮에는 웨이팅 거의 없음
— 주차는 광명시민체육관 공영주차장 이용 가능
크지 않은 동네인데, 이런 가게들이 다정하게 붙어 있는 풍경이 참 좋았다.
소도시 특유의 느슨한 분위기랄까.
광명이라는 동네, 은근히 매력 있다.
아니, 어쩌면
평일에 이렇게 다른 도시를 훌쩍 와볼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지금 내 삶의 가장 큰 매력인지도 모르겠다.
사람들로 북적이지 않는 거리,
조급하지 않은 공기,
평일 낮 특유의 한가함.
예전에는 모르고 지나쳤던 것들이다.
친구가 사준 포항 물회(가재미)는 기대 이상이었다.
얼마나 시원하고 개운한지 모른다.
살은 쫄깃했고, 비린내는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살얼음 동동 뜬 육수를 한 숟갈 떠먹는 순간, 몸 안으로 냉기가 스르르 퍼졌다.
초여름 더위와 피로가 잠시 씻겨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들른 ‘병풀상회’ 카페

규모는 미니멀한데 이상하게 오래 머물고 싶은 공간이었다.

초록 식물들 사이로 커피 향이 흐르고, 한쪽에는 와인병들이 조용히 놓여 있었다.
과하지 않게 감각적인 공간.


그 집 눈 작은 비숑 한 마리가 식물 사이를 어슬렁거리며 다녔는데,
그 모습조차 풍경 같았다.
괜히 자꾸 눈길이 갔다.

싱싱한 초록 사이에 잠깐 앉아 있었을 뿐인데 마음속 먼지까지 조금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식물이 사람을 살린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닌가 보다.


은퇴 후 좋은 점은 이런 것이다.
평일 오전의 느린 공기를 누릴 수 있다는 것.
사람 붐비지 않는 카페에서 친구와 속없는 이야기를 오래 할 수 있다는 것.
시간에 쫓기지 않고, 햇살 방향까지 바라볼 여유가 생긴다는 것.
문득 생각했다.
평일에 지하철을 타고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도시에 내려
방랑자처럼 목적 없이 걸어다녀 봐야겠다고.
지도도 보지 않고,
눈에 들어오는 골목 따라 걷다가
마음에 드는 카페가 나오면 들어가고,
작은 시장이 나오면 기웃거리고.
은퇴 후의 삶은
어쩌면 그렇게 천천히 떠도는 연습인지도 모르겠다.
명퇴한 동료 중에는 다시 학교로 돌아가 기간제나 시간제 교사를 닥치는 대로 일을 하는 친구도 있다.
그 친구가 웃으며 그랬다.
“은퇴 후 자아찾기? 말은 좋지.
근데 이 나이에 자아 찾아서 뭐할 건데?
언제까지 찾을 건데? 평생 그러다 말 거 아냐.”
듣고 보니 맞는 말 같아 나도 웃었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도 든다.
평생 자아를 찾다가 끝나는 게 어쩌면 우리 인생 아닐까 하고.
젊을 때는 먹고사느라 모르고,
중년에는 가족 챙기느라 모르고,
은퇴하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어떤 사람이지?’를 조금 생각해 보게 되는 것 같다.
평생 찾다가 끝날 자아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나는 그렇게 살아보고 싶다.
문득 이런 카페 하나 해볼까 싶다가도, 곧 생각을 접는다.
카페는 작은 감옥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니까.
막상 내가 가게를 열면, 지금처럼 느긋하게 커피 마시며 수다 떨 여유는 없어질지도 모른다.
어쩌면 지금의 나는
카페를 운영하고 싶은 사람이 아니라,
이렇게 떠돌며 좋은 공간을 발견하고 좋아하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
그리고 어쩌면 나는
은퇴 후 자아찾기라는
쓸쓸하지만 필연적인 과정을 시작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평일의 낯선 도시를 걷고,
사람 없는 카페에 앉아 오래 창밖을 바라보고,
목적 없이 골목을 떠도는 일들 속에서
조금씩 ‘일하던 나’ 말고
그냥 ‘나’를 다시 만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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